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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폭동 당시 흑인들이 보호했던 KOREAN MAMA

잡다구리

by beloved_joo 2020. 6. 1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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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지플로이드 사건으로 이핸 시위가 격력해 지면서 폭력적 시위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매체에 따르면 이미 한국인 상점 약 150곳 이상이 약탈 당했고, 또 어떤 흑인이 한 노인을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폭행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Black Lives Matter 라는 문구는 흑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시위로만 비춰지고 있으며, 다른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경시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결국 All Lives Matter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와같은 최근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1992년 LA 폭동인데요. 

 

당시 코리안타운의 대부분이 쑥대밭이 되었었죠. 이와 같이 피해상황이었음에도 흑인들이 직접 발벗고 나서서 지켜주었던 한인 상점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한인 상점은 주변 주민들에게 MAMA라고 불렸던 홍정복 씨의 상점이었습니다. 

홍정복씨는 LA에서 대표적인 흑인 거주지역 사우스 센트럴에서 가족들과 작은 환전소 및 식료품점을 운영하던 한인 여성이었습니다. 1980년 중반부터 가게를 시작해 15년간 가게를 운영하였는데, 인근의 주민은 홍정복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또 흑인들은 그를 MAMA라고 부르며 엄마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그의 MAMA라는 별명은 인종에 대한 차별을 모르는 그녀의 마음씨에서 나왔다고 해요. 

여기서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종차별을 안하는 사람은 많자나!??"

 

그런데 홍정복씨에게는 좀 다른 면모가 있었다고 해요, 

당시 일화를 보면 어린 나이에 엄마가되 기저귀와 우유 살돈이 없는 여성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무료로 챙겨주고, 

맥주를 훔쳐 달아나는 청년의 등에 대고 "조심해, 넘어져"라고 걱정의 말을 건내는 등 많은 일화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인자한 미소로 응대하는 그녀를 한번이라도 알게된 사람들은 MAMA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대 1992년 4월 LA 폭동이 일어났고, 당시 경찰들은 할리우드등 백인들 거주 지역만 보호하고, 코리안타운의 치안에는 손을 놓았다고 합니다. 이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한인 교민들이 총대를 메고, 지붕에 올라가 상점을 사수하여 "Roof Korea"이라는 단어도 생겼다고 해요. 

 

이러한 폭동 가운데 단 한곳 홍정복 씨의 상점만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흑인들이 자의로 불침번 까지 서가며 그녀의 가게를 피해없이 지켜줬기 때문이라는데요, 

인종을 넘어서는 깊은 유대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7년 후 홍정복씨는 무장강도에게 살해됩니다. 52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홍정복씨의 장례식은 지역사회장으로 치러졌는데 이또한 흑인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인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하네요. 

국내 언론은 물론 미국 현지 매체에서도 비중있게 그녀의 장례식을 다뤘다고 하니, 

그녀의 친절함과 미소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깊이 자리잡았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사망 소식에 많은 흑인들이 애도를 표했으며, 그녀를 Angel of the City라고 칭할정도였다고 해요. 

그 후로 28년이 지났지만, 현재 조명되고 있는 폭동 시위를 보며 인종 성별 을 뛰어넘은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보여준 홍정복씨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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